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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재혼 맞선자리 꼴불견 남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5. 19:18
소설에 등장하는 재혼 맞선자리 꼴불견 남녀

소설가 정이현 씨의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에

재혼정보회사가 등장하는 '타인의 고독'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 단편소설에는 5년 전 이혼한 남자 주인공이
어머니의 강요로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
맞선을 보는 에피소드가 2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맞선 상대 여성들을 비호감으로 묘사를 했네요.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에서 A니, B+니 하는 등급을 매긴다는 설정도 곁들였던데,
사람이 고기도 아니고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나요?^^



맞선남이 이런 복장을 하고 나왔다면 당신의 선택은?^^

맞선 에피소드를 보니 소개팅이나 맞선을 준비 중인 싱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할까 합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맞선 성공 전략이라고 할까요. 

34세의 남자 주인공은
스물 한살에 만난 여자와 7년간 연애를 하고,
스물 여덟에 결혼하여 7개월간 결혼생활을 한 후
스물 아홉에 헤어져 이혼남이 됩니다.

마흔 되기 전에 아들의 재혼을 성사시키려는 어머니는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 회원리스트에 아들의 이름을 올립니다.
남자는 직장과 신장에선 마이너스, 아파트 한 채와 짧은 결혼생활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아
B+ 레벨을 받습니다.
(실제로 제대로 된 결혼정보회사라면 등급이란 것은 없습니다)

남자는 첫번째 맞선 상대로 31세의 약사를 소개 받습니다.
호텔 커피숍에 마주 앉은 여자의 첫인상은 다소 통통한 체격 때문인지
둥글둥글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한마디에 남자는 화들짝 놀라죠.
"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나오셨어요?"
첫 만남에서 이런 공격적인 말투라니, 감점 대상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남자의 옷차림 때문입니다.
명색이 맞선을 보는 자리에 콤비 재킷은커녕
'캐주얼 브랜드 로고가 박힌 분홍 스웨터'를 입고 나왔으니
여자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게 틀림 없습니다.
그 후 여성은 공격, 남성은 방어를 하는 대화를 주고 받다가
여성은 한 시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선약이 뒤늦게 떠올랐다는 핑계를 대면서요.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 거죠.

“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나오셨어요?

둥글둥글 지루해 뵈는 첫인상과 달리 여자는 꽤 공격적인 말투를 구사했다. 여자가 평점 A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B+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명색이 맞선을 보는 자리인데도 쓰리 버튼 재킷은커녕 오른쪽 가슴에 캐주얼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분홍 스웨터를 입고 나와 앉아 있는 내 꼬락서니를 보고서 여자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정이현 작<타인의 고독> 중-


첫번째 맞선자리에서 남녀가 저지른 실수를 종합해 보면...
①남자가 호텔 커피숍 맞선에 무성의하게 면재킷과 면바지도 아닌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②남자의 옷차림에 마음이 확 상한 여성이 공격적인 말투로, 비꼬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③여자가 맞선 자리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약속이 있다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이제 두번째 맞선 풍경을 볼까요.
남자의 두번째 맞선상대는 서른 다섯의 골드미스입니다.
여자는 고양이 한마리와 햄스터 두마리를 키운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어떻게 한 공간에서 고양이와 햄스터를 키우냐고 물어보려다가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오해받을까봐 그만 둡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앉아 스파게티에 몰두하던 여자는
"결혼 생활이 행복하셨나 봐요."라고 물으며
자신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냉소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맞선을 보러 온 상대에게 '결혼 회의론'을 펼치다니!
도대체 맞선을 왜 보러 나온 걸까요.

두번째 맞선의 실패 요인은...
①남자는 자기 보호 본능으로 형식적인 대화만 했다
②여자는 맞선 상대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폭탄선언으로 무례를 범했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셨나 봐요.

나는 포크로 입천장을 찔린 사람처럼 멀거니 여자를 마주 보았다.

“아니, 다른 뜻은 없어요. 행복하셨으니까 그런 걸 또 하려는 게 아닐까 해서 말예요. 이런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전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시니컬하게 생각해요. 아시겠지만 여자한테는 특히 그렇잖아요. 물론 당사자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문제겠지만.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담당 매니저에게 불만사항을 접수시키고, 또 다른 ‘B+맨’을 물색해 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 무언가 뜨겁고 얼큰한 국물을 위장에 흘려보내고 싶다는 욕망은 크림 파스타의 느끼한 면발과 함께 포크에 둘둘 감겨 입속으로 무참히 사라졌다.

-정이현 작<타인의 고독> 중-